Chanhee

October 9, 2025

해자가 무너졌다

기술 장벽만 무너진 게 아니다. 크리에이터들의 해자도 사라지고 있다.

이제 누구나 AI로 창작한다. 코딩 모르는 사람이 웹사이트를 만들고, 화성학 모르는 사람이 음악을 만든다. 스포티파이엔 매달 수백만 곡이 쏟아지는데, 업로드 곡의 약 20%가 AI 작품이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점점 상관없어진다.

모두가 창작자가 되었지만

창작이 쉬워졌는데 돋보이기는 더 어렵다. 진입 장벽이 사라지자 경쟁자가 끝없이 늘었다. 대부분 소음 속에 묻히고, 선구자들만 살아남는다. 해자가 무너진 평지에서 모두가 서로를 밟고 서 있다.

이 과정에서 창의적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 AI가 창작을 대중화했지만, 중간 수준 크리에이터들은 생계가 어려워진다. 톱스타나 AI 최적화된 콘텐츠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시장에서 밀려난다.

창작도 나뉜다

스타트업처럼 데이터 중심과 신념 중심으로 나뉜다.

데이터 중심: 알고리즘 분석, A/B 테스트, 바이럴 계산. 해자는 최적화 속도. AI가 이 영역을 장악하며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쏟아낸다.

신념 중심: 일관된 정체성, 뚜렷한 메시지. 해자는 복제 불가능한 세계관. 전통 크리에이터들이 여기서 시작하지만, 생존 압박에 흔들린다.

스타트업이 신념 중심과 데이터 중심 중 하나를 명확히 선택하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 망하듯,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다. 양쪽을 오가면 정체성이 흐려지고, 팬도 데이터도 잡지 못한다. 결국 소음 속에 묻힌다.

스타트업 사례로 보자.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강한 비전(신념 중심)으로 혁신을 이끌었지만, 데이터 중심 접근도 병행해 균형을 맞췄다. 위워크는 과도한 비전 홍보로 데이터 기반 시장 분석을 소홀히 해 실패했다. 넷플릭스는 데이터 중심으로 사용자 행동을 분석해 콘텐츠를 최적화하며 성공했지만, 초기 창의적 신념도 함께했다. 퀴비는 비전과 데이터를 애매하게 섞어 단기간에 망했다.

음악 업계도 비슷하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신념 중심으로 팬과의 감정 연결과 스토리텔링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성공했다. BTS는 데이터 중심으로 팬 데이터 분석과 소셜 미디어 최적화를 통해 글로벌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초기 트렌드를 쫓다 정체성을 잃은 일부 팝 스타들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제이지는 초기 실패 후 신념을 고수하며 성공한 경우로, 스탠스 일관성이 핵심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스탠스의 일관성이 성공의 본질이다. 한 쪽을 명확히 선택하고 유지해야 해자가 다시 세워진다.

새로운 해자는 플랫폼의 알고리즘이다

기술 해자가 무너진 자리에 플랫폼 알고리즘이 들어섰다. 알고리즘이 추천과 노출을 좌우하니, 이를 최적화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다. AI 시대에서 속도와 비전이 해자가 되듯, 크리에이터도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 해자도 약하다. 플랫폼이 바뀌면 모두 평지로 돌아간다. 어쩌면 진짜 해자는 커뮤니티나 모멘텀일 수 있다.

해자가 무너졌다. 모두가 평지에서 서로를 밟고 서 있다. 이제 우리는 알고리즘으로 구분될까? 창작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모른다. 그저 불확실성 속에서 창작하며 의미를 찾는다. 어쩌면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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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 단순하게 살아갑니다.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