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저거 봐봐!하는 위 사진처럼, 여행 내내 성호와 "다른그림찾기"를 하며 놀았다. 오직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게 뭘까? 그 질문을 두고 일주일 내내 생각을 주고 받았다.
경차의 압도적 인기(도로 위 95%가 레이형 박스차다), 비보호 직진(놀랍게도 양보를 해준다), "배민"의 부재(어쩐지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는다), 좌변기에 붙어있는 세면대(물을 내리자마자 바로 손을 씻을 수 있다), 양지로 거리낌 없이 올라오는 음지(퇴근길 한복판에서 말이다) 등,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그림을 포착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그 중에선 비교/대조의 재미를 넘어 귀감이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태어난 한국에서도, 내 영혼을 채워준 영국에서도, 내 꿈을 키워준 미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본만의 문화가 있었다.
무형의 가치를 형용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Show and tell - 보여지는 것은 쉽다. 무엇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는지, 먼저 기억의 조각을 이어 붙여본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해 찾은, 아직 때 타지 않은 한 온천 료칸에서의 일이다(야마미즈키란 곳이다).
체크인 후 저녁식사까지 시간이 남았을 때, 주변도 둘러볼겸 가법게 러닝을 했다. 한 30분 정도 뛰고 돌아와 문을 열었는데, 이게 왠걸, 직원이 마루 한가운데에 실내화를 넌지시 놓아주는 것이 아닌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 한마디 없이, 온화한 미소만을 띠며 말이다. 한국이었다면 언젠간 돌아오겠지하며 마루에 두고 가는게 최선이었을텐데, 이 분은 내가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구태여 이런 수고를? 아니 이렇게까지? 의아함과 감사함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 신기함은 식사시간에 이르러 가중됐다. 일행과 함께 예약석에 들어가려는데, 문앞에 우리의 이름이 (金樣御席 / 기무 사마 외 일동) 서예로 적혀있었다. 한국이었다면 굴림체 글자가 무심히 옆으로 지나가는 LCD 스크린이 자리했을 곳에 정돈된 먹물이 한 획 한 획 쓰여져 있었다.
구태여 이렇게까지?를 속으로 되내이며 식사를 하던 중, 추가로 주문한 사케의 뒷맛이 범상치 않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일본어에 능숙했던 우용이가 알바생에게 혹시 이걸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시종일관 하이톤 목소리와 밝은 웃음으로 서빙을 하던 앳된 소녀는 잠시 기다려달라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한 손에 지도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우용이 왼쪽 옆에 무릎꿇고 앉아 식탁위에 지도를, 그 다음엔 양 팔꿈치를 푹 내려놓고는, 펜으로 길을 하나하나 그려가며 알려주었다. 역시 한국이었다면, “내가 사장도 아닌데”하며 떨떠름한 표정이 역력했을텐데, 미국이었다면 “팁은 주는거지?”했을텐데, 이 신기한 알바생은 10분 사이에 다른 직원을 찾아가 물어본듯 했으며, 어찌저찌 찾아낸 정보를 암기해왔고 (포스트잇에 적어온게 아니었으니), 묵묵히 그걸 풀어내는 그녀의 표정과 억양은 절대로 위선적이지 않은 진심이었다 (우용이는 그녀와 결혼하겠단다).
슬슬 명확해지던 내 동경심에 결정타를 날린 일은 체크아웃하는 날 벌어졌다. 료칸에선 실내화를 신고 다녀야하는데, 체크인할 때 신발을 건네주면 실내화로 바꿔준다. 체크인은 일행 5명이 동시에 했지만, 나갈 땐 산책을 하고 싶었던 성호와 나, 2명이 먼저 나와 신발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 내 앞에는 컨버스를, 그리고 성호 앞에는 나이키 맥스를 놓는 것이 아닌가. 이럴수가, 순간 성호와 눈을 마주치며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들은 5명 각자가 어떤 신발을 신고 들어왔는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항상 안으로 구겨져있던 내 컨버스의 설포를 곱게 빼주었으며, 내부는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거기서 확신이 섰다. 구태여 공을 들이는 그들의 정성은 문화다. 호혜적 서비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지간한 5성급 호텔이 1박에 최소 70만원은 되는데, 야마미즈키에선 겨우 30만원 남짓을 냈다. 그들은 숫자 이외의 무언가를 추구하는게 분명했다.
AI로 무장한 극단적 자동화의 시대에는 과거에 모든 것을 수공예로 만들던 장인과 같은 이들이 오히려 살아남게 됩니다. 그 장인의 우아한 충실함에 우리는 환호하고 그를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장인을 만나고 장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장인의 상품을 얻을 수 있는 업은 부가가치가 점점 커질 것입니다. 이때 가장 소중한 상품은 장인의 '시간'입니다.
<송길영, 시대예보: 호명사회 중>
그래서, 그 가치가 정확히 무엇인가? 가장 가까운 표현은, 송길영 박사님의 말을 빌리자면 우아한 충실함이다.
생각해보면 문 앞에서 날 기다리거나, 붓으로 이름을 써준다거나, 자신도 모르는 정보를 직접 발품팔아 찾아준다거나, 5명의 신발을 모두 기억해주는건 충분히 자동화가 가능하다. 센서와 로봇과 스크린을 여기저기에 배치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구태여 시간을 썼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에, 바로 그 비효율적 답례에 난 감동했으며,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당연하게도) 그들의 지표를 올려줄 것이다.
송길영 박사님의 말대로, “그들의 가장 소중한 상품은 시간”이며, 특이점에 가까워지며 극단적 자동화가 이뤄질수록, 우리는 그들의 “우아한 충실함”에 환호할 것이다.
어쩌면 말이다. 압도적 생산성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 연애편지를 쓸 때는 뭐 당연한 소리지만, 어쩌면 비즈니스에서도, 때로는 비효율을 추구해야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지능 시대에 살아남는 자들은 에반젤리스트도, 얼리어답터도 아닌, 그런 충실함을 우아하게 지켜내는 장인이 아닐까하는, 그런 모순적인 생각이 든다.
초지능 시대에 살아남는 자들은 에반젤리스트도, 얼리어답터도 아닌, 그런 충실함을 우아하게 지켜내는 장인이 아닐까하는, 그런 모순적인 생각이 든다.